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 조커의 첫 수, 규칙없는 게임의 시작
고담은 겉보기엔 조금 나아지는 듯합니다. 배트맨이 밤마다 범죄자들을 쓸어 담고, 경찰의 짐 고든이 움직이고, 검사 하비 덴트가 법정과 언론에서 전면전을 선언하니까요. “이 도시도 변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기려는 찰나, 은행 강도 사건이 터집니다. 계획이 너무 정교하고, 배신이 너무 빠르고, 마지막에 웃는 놈이 따로 있는 느낌이 확 옵니다. 바로 조커입니다. 이 사람은 돈이 목적 같지가 않습니다. 애초에 고담의 규칙 자체를 부숴버리려는 존재처럼 움직이십니다.
조커는 마피아 자금과 조직을 건드리며 도시 전체를 흔듭니다. 경찰도, 언론도, 시민도 혼란에 빠지고요. 배트맨은 단서들을 쫓아 조커의 계획을 막으려 하지만, 조커는 늘 한 발 앞에서 “선택”을 강요합니다. 폭발이 일어나고, 미끼가 던져지고, 누군가는 협박당하고, 누군가는 납치됩니다. 하비 덴트와 레이첼(브루스의 오래된 인연)이 중심에 걸리면서 사태는 더 크게 번집니다. 고담이 기대하던 ‘정의의 얼굴’ 하비 덴트가 조커의 표적이 되자, 배트맨과 고든은 어떻게든 그를 지키려 합니다. 그런데 조커는 보호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이 기가 막힙니다. 사람을 직접 꺾는 게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서 사람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방식이랄까요.
사건은 연쇄적으로 터지고, 조커는 계속해서 게임판을 키웁니다. 도시를 공포에 몰아넣고, 경찰 조직 안쪽까지 흔들고, “정의로운 사람도 결국 무너진다”는 걸 증명하려고 드는 듯합니다. 배트맨은 추적 장치를 활용해 도시를 감시하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합니다. 그 과정에서 배트맨이 지키려는 원칙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일 사이가 점점 갈라집니다. 그리고 결국 하비 덴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닥치며, 고담이 꿈꾸던 희망은 급격히 다른 얼굴로 변합니다. 영웅을 만들려던 도시가, 그 영웅을 잃는 과정이 너무 잔인하게 펼쳐집니다.
후반부엔 조커가 마지막 시험을 꺼내 드십니다. 시민들을 배에 태워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버튼 하나로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게 만드는 극한 상황을 던집니다. 동시에 하비 덴트는 개인의 비극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뒤틀어 버리며 폭주합니다. 배트맨은 조커를 막아야 하고, 하비도 막아야 하고, 도시의 희망도 지켜야 하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결국 배트맨은 선택합니다. 고담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하비 덴트라는 상징이 완전히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비난을 짊어지는 길로요. 그래서 마지막엔 배트맨이 쫓기는 사람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결말로 끝납니다. 고담의 ‘내일’을 위해 오늘의 ‘악역’을 자처하는 마무리입니다.
등장인물 (보면서 느낀 포인트 섞어서)
■ 브루스 웨인 / 배트맨
이분은 늘 고통을 안고 사시는 분인데, 이번 편에서는 그 무게가 더 진득합니다. 배트맨이라는 가면이 “도시를 지키는 도구”였는데, 어느 순간 도시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날을 꿈꾸십니다. 그래서 하비 덴트에게 기대를 걸지요. “법으로, 제도로, 낮에 싸우는 영웅”이 나타나면 자신은 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요. 근데 조커가 그 희망을 정확히 찢어버립니다. 저는 이 캐릭터가 멋있다기보다… 지쳐 보이는데 끝까지 버티는 얼굴이 더 강하게 남았습니다.
■ 조커
설명이 길 필요가 없지요. 등장할 때마다 공기가 바뀝니다. 이분은 “악당”이라기보다, 규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혼돈 그 자체처럼 느껴지셨습니다. 목적이 돈도, 권력도 아닌 것 같고, 사람 마음속의 약한 고리를 건드려서 “봐라, 너희도 결국 나랑 다르지 않다”를 증명하려고 드는 느낌입니다. 말투도 장난 같고, 웃음도 장난 같은데, 그 장난이 사람 목숨을 걸고 놀아서 더 끔찍합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을 못 떼겠더라고요.
■ 하비 덴트
초반의 하비는 정말 ‘고담의 희망’ 그 자체입니다. 강단 있고, 말이 서고, 대중이 기대할 만한 얼굴. 배트맨이 “내가 물러날 수 있겠다” 싶어질 정도로요. 그래서 더 잔인합니다. 조커가 무너뜨리는 방식이 “그를 약하다고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믿는 정의를 뒤틀어 버리는 것이라서요. 한 번 꺾인 뒤엔 모든 판단이 ‘동전’으로 흘러가는데, 저는 그 장면들이 되게 슬프면서도 무섭게 남았습니다. “누구든 무너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주시는 인물 같았습니다.
■ 레이첼 도스
브루스와 하비 사이에서 감정의 중심축을 잡고 있는 인물인데, 단순한 로맨스 역할이 아니라 “브루스가 인간으로 남아있게 하는 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선택과 타이밍이 교차하면서, 결국 고담의 비극을 확정 짓는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가는데… 이 인물이 놓인 자리 자체가 너무 가혹합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멍해집니다. 정말로요.
■ 짐 고든 & 알프레드
고든은 현실의 최전선에서 버티는 사람입니다. 배트맨처럼 상징이 아니라, 매일매일 사건 보고서와 시체 사이에서 일하는 분이랄까요. 그래서 신뢰가 더 갑니다. 알프레드는… 저는 이분이 영화의 양심이라고 느꼈습니다. “세상이 다 논리로만 굴러가진 않는다”는 말을 조용히 해주시는 분. 말 수는 적은데, 한마디가 오래 남는 캐릭터였습니다.
리뷰 - 정의는 왜 항상 대가를 요구하는가
다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의 옷을 입은 ‘도덕 실험’ 같다는 것. 액션이 화려하고 스케일도 큰데, 진짜 무서운 건 주먹이 아니라 “선택”이었습니다. 조커가 던지는 질문이 계속 따라옵니다. “너는 끝까지 선할 수 있나?” “질서를 지키려면 어디까지 더러워질 수 있나?”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보는 내내 긴장감이 ‘펑’ 터지기보다, 목 뒤를 계속 잡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조커가 사람을 직접 죽이는 장면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정의가 흔들리고, 믿음이 깨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게 더 서늘합니다. 그리고 배트맨의 선택은 멋있다기보다… 씁쓸합니다. 영웅이 영웅으로 남기 위해, 자신을 괴물로 보이게 만드는 결단이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판타지로 도망갈 틈이 없었습니다. “정의는 늘 깨끗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 답이 쉽게 안 나옵니다.
연출도 대단하지만, 리듬이 참 묘합니다. 장면 전환이 빠르고 사건이 연속인데도, 각 장면이 ‘감정’을 남깁니다. 특히 도시에 깔린 분위기—경찰차 사이렌, 뉴스 속보, 군중의 공포—이게 고담을 실제 도시처럼 느끼게 하더라고요. 그리고 조커가 나올 때의 공기 변화… 이건 말로 설명이 잘 안 됩니다. 그냥 “아, 이제 또 뭔가 터지겠구나” 하고 몸이 먼저 긴장합니다.
하비 덴트 서사는 개인적으로 가장 아팠습니다. 희망이었던 사람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그래도 끝까지 버텨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게 되는데… 영화는 그런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강렬합니다. 이 영화는 위로보다, 현실을 들이대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고담 시민들이 보여주는 선택(그 극한 상황에서요), 거기서 아주 미세하게 숨통이 트입니다.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구나” 싶은 한 줄기 같은 것.
결론을 딱 잘라 말하자면… 저는 이 영화가 “재미있다”보다 “남는다”에 더 가까웠습니다. 보고 나서 시간이 꽤 지나도, 장면 몇 개가 아니라 질문 자체가 남습니다. 악은 왜 설득력이 생기고, 선은 왜 늘 대가를 치르는가. 이런 생각이요. 다시 볼 때마다 다른 포인트가 꽂힐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커의 말이 무섭고, 다음에는 배트맨의 선택이 아프고, 또 다음에는 고든의 현실감이 더 크게 보이고… 그런 영화입니다.